멸종위기동물

비크나 – 안데스 고원의 황금 양털, 조용한 생존자

ad제니 2025. 4. 4. 13:14

고요한 고산의 숨결 속에서

비크나(Vicuña)는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의 고산 지대, 특히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등의 해발 3,200미터 이상의 고원에서 서식하는 야생 초식동물이다. 라마와 알파카의 조상 격으로 알려진 이들은 날렵한 체형, 커다란 눈망울, 황금빛이 감도는 부드러운 털로 인해 고산 생태계의 보석이라 불린다.

 

비크나는 유난히 얇고 따뜻한 털을 지니고 있어 고산의 극한 기온 속에서도 체온을 유지할 수 있다. 이 털은 세계에서 가장 고급스럽고 가벼운 천연 섬유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한 벌의 비크나 털 제품은 수천 달러에 거래될 만큼 희귀하고 고가이다. 그러나 바로 그 황금 같은 털 때문에 비크나는 오랜 세월 인간의 표적이 되었고, 한때 멸종 직전까지 몰리기도 했다.

 

비크나 – 안데스 고원의 황금 양털, 조용한 생존자

 

 

생물학적 특성 – 고산 지형의 전문가

비크나는 평균 몸길이 약 1.5미터, 어깨 높이 약 90센티미터 정도로, 낙타과 동물 중 가장 작다. 몸무게는 35킬로그램에서 50킬로그램 정도이며, 민첩한 다리와 가벼운 체형 덕분에 험준한 산악 지형에서도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피부 아래 지방층이 얇고, 적혈구 밀도가 높아 산소가 희박한 고산 환경에서도 원활하게 생존할 수 있도록 적응되어 있다.

 

이들은 주로 아침과 저녁에 활동하며, 낮에는 햇볕을 피해 휴식을 취한다. 식성은 초식성으로, 고산 지대의 풀과 이끼, 선인장류 등을 섭취하며, 물은 이슬이나 식물에서 흡수한 수분으로 대부분 충당한다. 이처럼 극한의 환경에 완벽히 적응한 비크나는 고산 생태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비크나는 무리를 이루어 생활하며, 일반적으로 한 마리의 수컷이 여러 마리의 암컷과 새끼를 이끄는 하렘 구조를 가진다. 번식은 주로 3월에서 5월 사이에 이루어지며, 암컷은 임신 기간 11개월을 거쳐 한 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새끼는 생후 수 시간 이내에 걷기 시작하며, 1년 정도 어미와 함께 생활한 뒤 독립한다. 번식률은 낮은 편이며, 포식자와 환경 위협에 취약해 개체 수 회복 속도가 느리다.

 

 

 

멸종 위기의 그림자

1. 과거의 남획과 불법 포획

비크나의 털은 그 가치를 인정받기 이전부터 이미 제국 시대의 귀족들 사이에서 귀한 직물로 사용되었고, 스페인 식민지 시기에는 무분별한 남획이 이어졌다. 20세기 중반에는 불법 사냥이 극심해지며, 전 세계 비크나 개체 수가 약 6,000마리 이하로 급감했다. 밀렵꾼들은 털을 얻기 위해 비크나를 죽였고, 이는 단순한 수 감소를 넘어서 군집 생태의 붕괴로 이어졌다.

 

2. 서식지 감소와 기후 변화

고산 지대는 지리적으로 외진 편이지만, 최근에는 방목, 농지 개간, 광산 개발 등으로 인해 비크나의 서식지가 파편화되고 있다. 또한 기후 변화로 인해 생태계 구조가 흔들리고, 비크나가 의존하던 풀과 수분 공급원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비크나의 번식 성공률과 생존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3. 유전 다양성의 감소

한때 극단적으로 줄어든 개체 수는 유전적 병목현상을 유발했다. 이로 인해 현재의 비크나 개체군은 유전적 다양성이 제한적이며, 질병이나 환경 변화에 대한 저항력이 낮다. 특히 소수 지역에 집중된 개체들은 외부 교류가 적어, 근친 교배에 의한 유전 질환 우려도 존재한다.

 

 

 

보호를 위한 전략과 희망

1. 공동체 기반 보호 모델

페루와 볼리비아를 중심으로 지역 공동체와 정부가 협력해 비크나 보호에 나서고 있다. 전통적인 ‘차쿠(Chaccu)’라는 방식으로, 매년 한 차례 주민들이 비크나를 포획해 털을 깎고 방사하는 시스템이 정착되었다. 이는 동물을 해치지 않고도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방식으로, 지역 주민에게 안정적인 수입을 제공하면서 보존에도 기여하고 있다.

 

2. 국제 협약과 법적 보호

비크나는 CITES(멸종위기 야생동식물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 부속서 I 또는 II에 등록되어 있으며, 국가별로도 엄격한 보호 법령이 존재한다. 허가 없이 털을 채취하거나 거래하는 행위는 불법이며, 국제적 감시 하에 규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체계적 보호 정책은 과거의 남획에서 현재의 관리 가능한 자원 이용으로의 전환을 가능하게 했다.

 

3. 생태관광과 교육의 접목

비크나가 서식하는 지역은 풍경이 아름답고, 고산 생태계 특유의 문화적 가치가 크다. 이를 활용해 생태관광을 접목한 보호 전략이 추진되고 있다. 관광객들은 지역 공동체의 보호 활동에 참여하거나 비크나 관련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으며, 이는 보존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 비크나 털 제품을 구매할 때 윤리적으로 생산된 인증 제품인지 확인하자.
  • 남미 지역 고산 생태계와 관련된 보호 단체나 프로젝트에 후원하거나 관심을 갖자.
  • 불법 야생동물 제품 소비를 지양하고, 주변에도 그 위험성과 불법성을 알리자.
  • 비크나와 같은 멸종 위기 야생동물에 대한 지식을 널리 공유하자.

 

 

고요한 생명에 대한 책임

비크나는 화려하지도, 눈에 띄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수천 년 동안 고산 생태계와 함께 살아온 조용한 생존자들이다. 한때는 멸종 직전까지 몰렸지만, 인간과 자연이 협력한 보호 모델 덕분에 점차 회복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회복세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관심이 멀어지면 다시 위기 속으로 사라질 수 있다. 고산의 바람 속을 달리며 살아가는 비크나의 존재가, 우리의 기억과 실천 속에서도 살아있을 수 있도록 지금, 우리가 행동해야 한다.